
“..하아..”
젖은 손등으로 눈가를 가렸다. 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쌓인 서류들을 처리하고 나서,
난데없이 쾅 소리가 울렸다. 화들짝 놀라 꼴사납게 어깨를 떨었고, 손을 내리며 눈을 크게 떴다. 언제 왔는지 화가 난 듯한 표정의 아우릭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아까부터 계속 불렀는데 왜 대답이 없어?”
“..못 들었다.”
“단원들이 부단장님 다쳤다길래 와봤더니, 조용해서 놀랐잖아.”
신전 안을 돌아다니다가 오전 일에 대해 들은 모양이었다. 책상 위에 넓게 펼쳐진 검은색 다섯 손가락. 말없이 얼굴을 가리고 있으니 쓰러진 줄 알고 큰 소리를 냈나 보다. 고개를 옆으로 돌렸지만, 턱이 잡혀 다시 앞을 보았다.
“이게 뭐야, 얼굴에 흉 지겠네.”
그의 눈썹이 팔자로 늘어졌다. 잔뜩 속상하다는 얼굴로 약간 다친 상처를 이리저리 살피는 눈길. 연인은 주머니를 뒤적여 반창고를 꺼내들었다. 연필꽂이에 있는 펜 하나를 집어 들어 반창고 위에 ‘부단장님 아프지 말기’ 라는 작은 글씨와 큼직한 하트를 쓰더니 종이를 떼어냈고, 유리로 만들어진 장식품 다루듯 조심스럽게 상처에 붙여주었다. 땀을 많이 흘려 씻어야 한다고 하기 전에 아, 하고 짧은 신음이 먼저 나왔다.
“이거 봐. 반창고 위로 벌써 피가 묻어 나오잖아. 어쩌다 이렇게 다쳤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니 상체를 곧추세우고 손부채질을 하며 천장을 올려다본다. 곧 에에, 하며 터져 나오는 짜증.
“덥지 않아? 왜 에어컨도 안 켜놨어?’
“그건,”
방금 집무실에 들어와서 그렇다는 대답을 하려다가 말을 멈췄다. 그리고 눈동자를 한차례 굴렸다.
“더우면 옷을 조금 풀어라.”
심장이 쿵쿵 뛰었다. 절대 하면 안 된다고 못 박아놓은 일을 몰래 해버린 아이처럼 손발이 저릿거렸고, 등에서 식은땀이 솟아났다. 왜? 무슨 소리냐고 화를 낼까봐? 싫다고 거절할까봐? 아니면 넥타이를 풀어낸 그의 목에 흉터가 없을까봐? 그날 본 것이 단순한 착각일까봐?
아우릭은 천장을 향하던 고개를 책상 의자에 앉아있는 저와 마주 볼 수 있을 정도로 숙였다. 서 있는 그의 등 뒤로 밖에서 들어오는 햇살이 비쳤다. 그림자가 내려앉은 얼굴. 표정이 없다. 서늘함이 발끝부터 타고 올랐다.
“그럴 필요가 뭐 있어.”
가느다란 손가락이 에어컨의 리모컨 버튼을 꾹 눌렀다. 삑, 소리와 함께 건조한 바람이 흘러나온다. 찜통 같던 집무실에 퍼지는 시원함.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는 어느새 눈꼬리가 휘어지도록 웃고 있었다.
“이렇게 에어컨을 켜면 되잖아?”
“..그렇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