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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날.

 

 오전 내내 안정화 작업을 하느라 오후 네시가 돼서야 집무실로 돌아왔다. 베논은 손등으로 턱을 쓸며 책상 의자에 철퍽 앉았다. 흐른 땀이 새하얀 장갑을 축축하게 적셔냈다. 여름용으로 얇게 만든 제복 아래로 피부가 끈적이는 게 느껴진다.

 인상을 구기며 눈을 감았다. 그 사이 쌓인 서류들이 무서울 정도로 높다.

 

 예상대로라면 두시 전에 끝나야 했을 작업이었다. 이제서야 신전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갑자기 땅이 크게 흔들리고 나타난 골렘에게 시간을 잡아먹힌 탓이었다.

 팔을 뻗어 주먹을 쥐자, 거대한 돌 틈으로 검은 기운이 우르르 올라왔다. 다가오려던 마물은 중력에 억눌려 주저앉았고, 바닥은 움푹 파였다. 자갈이 튀고 흙먼지가 날렸다. 어찌나 큰 지 분명 중심을 잃고 쓰러져 있는데도 머리 위로 드리운 그림자가 짙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단원들을 향해 답지 않게 목소리를 높였다. 침착하게 주변을 살피고 사람들을 대피시키라고 명령하자 정신을 차린 몇몇이 알겠다며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안정화 작업을 한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북적북적 모여들었던 시민들은 허둥지둥 도망쳤다.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비명을 질렀다. 필요해서 꺼내놓았던 도구가 그들의 발에 채여 공중을 날았다.

 골렘은 만만치 않았다. 자꾸만 빠져나가려고 꿈틀거렸고, 꽉 틀어쥔 주먹은 바들바들 떨렸다. 제 눈동자는 평소보다 짙은 검은색으로 빛나고 있을 것이다. 그날 아우릭이 능력을 사용하며 주황색으로 빛났던 것처럼.

 ..그날. 그날 왜 능력을 쓰고 있었을까. 나처럼 마물을 만났던 걸까. 목 아래 흉터는 언제 생긴 걸까. 별의 힘을 사용할 때마다 온몸을 감싸도는 찌릿한 느낌. 이것이 그의 피부 안쪽부터 갉아먹었을까.

 불쑥 끼어든 딴 생각이 집중력을 흐리게 만들었고, 주저앉았던 골렘은 굉음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깜짝 놀라 급하게 뒷걸음질 쳤지만 날라온 공격은 정확하게 볼을 길게 파내고 지나갔다.

 

 어찌 어찌 수습을 하긴 했지만, 멍청했다. 긴급한 상황에서 다른 생각을 하다니. 사상자가 나오지 않은 것이 기적 같은 상황이었다. 덜덜 떨리는 다리에 연신 힘을 주며 복귀하는 내내 뒤에서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잊혀지지 않는다. ‘오늘 베논 부단장님 상태가 안 좋으신 것 같지 않아?’

 

 안 그래도 더운 날이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옷이 땀에 절어버릴 만큼 강한 태양이었다. 바람 한 점 불 지 않았고, 숨을 쉴 때마다 위에서 내리쬐는 빛과 달궈진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명치가 콱 막혔다. 떨어져 나간 살점과 드러난 피부 아래쪽이 따끔거렸다. 씻고 나서 약을 발라야 할 텐데.

 오늘 출근을 한 후, 처음 들어오는 집무실의 공기는 갑갑했다. 꾸역꾸역 들어찬 더위가 빠져나가도록 창문을 열고 환기라도 시키고 싶었으나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다친 사람이 저 뿐이라는 안도감과 집중력이 너무도 쉽게 흐트러져 버렸다는 자괴감이 두 다리 위로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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