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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입술을 어루만지던 엄지가 사라지고, 그의 입술이 와닿았다. 의도를 알아채고 세우고 있던 허리에 힘을 풀며 뒤로 기댔다. 푹신하게 등을 감싸는 의자 받침. 도장을 찍듯 꾸욱 눌리는 것이 불편해 작게 입을 벌리자 기다렸다는 듯 파고드는 혀. 고소한 향이 났다. 피비앙스 저택에서 식후마다 나오는 커피의 맛.

 볼을 어루만지던 손이 뒷목을 감싸 쥔다. 가볍게 치열이 훑어지는 느낌에 읽고 있던 보고서를 내려두었다. 옆에 있던 펜을 건드렸는지 도르륵거리며 책상 아래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대낮이었고, 일을 해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닫힌 문 바깥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복도를 오가고 있었다. 이성은 누군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며 이쯤에서 관두라는 비상벨을 울려댔다. 제가 거절한다면 억지로 밀어붙일 사람이 아니란 것쯤은 안다. 그렇지만, 이렇게 마주 보게 된 건 오랜만이다. 언제 마지막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두 팔을 들어 올려 그의 목에 둘렀다. 이런 제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우릭은 손가락을 세워 옷깃 아래로 넣고 뒷목을 간질었다.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점차 기울어지는 무게를 이기지 못한 의자가 끼익거리며 울었다. 서로의 혀가 얽혔고, 자연스럽게 이어질 행동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동시에 든 생각은 제어를 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은근슬쩍 한쪽 팔을 내리고 꽉 잠긴 그의 넥타이에 손을 댔다. 집무실 안은 밝았다. 단추 하나만 풀어내면 그날 봤던 흉터를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다. 이번에 처음 봤는데 놀랐다는 척하며 언제 생긴 거냐, 왜 생긴 거냐 물을 수도 있다.

 느릿하게 넥타이 매듭에 검지를 끼워 넣었다. 맞붙어 있던 입술이 떨어진 건 거의 동시였다.

 

 목 뒤를 감싸 쥐고 있던 손이 사라졌고, 나 또한 그의 목에서 손을 떼어냈다. 명백한 거부였다. 만지지 말라는, 흉터는 내보이고 싶지 않다는 신호.

 감정 없이 반짝이던 금빛 눈동자가 웃음 뒤로 사라진다. 저 미소 아래로 숨긴 본심은 뭘까. 그는 벗겨낸 안경을 다시 씌우더니 한걸음 물러섰다. 의자가 한 번 더 끼익거렸다.

 

 “일이 많은 것 같은데, 난 이만 가볼게.”

 

 가까이 다가왔을 때만큼 일정하고 가벼운 걸음으로 문으로 향하는 연인. 멍하게 허전해진 입술을 핥으며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상대를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

 

 “..기다려라, 아우릭. 너도 일을,”

 “안녕~”

 

 검은 장갑을 낀 손이 팔랑거리며 좌우로 흔들렸고, 문이 닫혔다.

 

 베논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내려두었던 보고서로 눈을 돌렸다. 바로 뛰쳐나가면 멋대로 사라지는 단장을 잡아 자리에 앉힐 수 있었지만 그럴 만한 기운이 나지 않는다.

 일 년 전, 지금보다 훨씬 무더웠던 날, 늘 그렇듯 업무시간 내내 사라져 있는 이가 나무 그늘을 따라 누워있는 것을 발견하고 화를 내는 대신 울컥 쏟아버린 마음. 벙찐 얼굴이 붉게 물들었던 그 순간부터 우리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입맞춤을 했다. 더 나아간 스킨십도 수십 번이었다. 하루는 그의 침실, 하루는 그의 서재, 또 다른 하루는 그의 훈련실. 늘 쫓기는 것처럼 급하고 여유 없었던 관계. 그럼에도 제 감정이 일방적이지 않음에 감사하고 행복했다.

 잘 생각해보면 나는 아직까지 그의 맨몸을 본 적이 없다. 왜 이제서야 전혀 상관없었던 사실이 신경 쓰이는 걸까. 감사는 충분하게 했고, 행복도 넘치게 느꼈으니 욕심이 나기 시작한다는 건가. 이제 와서 이런 고민을 하는 것도 우습다. 내가 욕심을 내도 되는 걸까. 지금처럼 이렇게, 넥타이를 풀어내는 것조차 거부하는 상대를.

 

 집무실은 고요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감도는 침묵. 삐뚤어진 안경을 고쳐 쓰며 빈 머그잔을 채우기 위해 일어섰고, 일부러 힘을 주었지만 의자는 소리 없이 밀려났다.

 덥다. 꽁꽁 숨어있던 더위가 느닷없이 온몸을 감싸버린 것 같다. 어디서 들어왔는지 모를 날벌레가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책상을 떠나 푸드득 날아갔다. 색이 진하게 나는 투명한 주전자. 잠깐 사이 깊게 우러난 차에서는 텁텁한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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