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장님은 그냥 옆에 있어주세요. 간간히 대화도 나눠 주시고요.”라는 말을 하지 못한 채 빙그레 웃었다.
“냉장고에 제가 미리 얼려둔 얼음이 있어요. 그것 좀 갈아 주시겠어요? 얼음 가는 기계는…….”
나인이 허리를 숙여 찬장을 열었다. 일전에 란더가 만들어 준 X34-S23 기계를 꺼내 올려놓은 뒤 앞치마를 하나 더 꺼냈다.
“이거 란더씨가 만들어 주신 건데요. 여기에 얼음을 넣어서 손잡이를 잡아 돌리면 얼음이 부드럽게 갈려 나오는 방식으로 되어 있더라구요! 신기하죠? 갈아 둔 얼음 위에 팥이랑, 우유랑, 과일을 올려 먹으면 맛있을 것 같아요. 꿀도 좀 넣을까요?”
나인은 말을 하면서 리온의 뒤로 가 앞치마를 매주었다. 허리춤에 예쁘게 리본을 만들어 놓은 뒤, 다시 리온의 옆으로 돌아 와 섰다.
“오. 괜찮은 물건인 걸? 나인 네가 생각한 레시피도 맛있을 것 같은데. 오늘은 모양이 이상하진 않겠어.”
“대장님두 차암…….”
리온이 큭큭 웃고는 기계를 유심히 살피다 손을 씻고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냈다. 나인이 얼려 둔 얼음은 꽤 많아서 가는데 제법 시간이 소요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시계를 보니 이제 곧 더위와 씨름하다 늦잠을 자지 못한 피스메이커 대원들이 하나둘 고픈 배를 그러쥐고 내려 올 시간이었다.
리온이 얼음을 갈기 시작했고, 나인은 손을 씻은 뒤 과일의 껍질을 벗겨 칼로 썰었다. 바나나는 그냥 껍질을 까서 자르면 그만이지만 수박은 이상했다. 어떤 것은 사각형으로 모양이 예뻤고, 어떤 것은 똑같이 잘랐는데 육각형이었다. 또 어떤 것은 의도치 않게 하트 모양이 되었다. 나인은 우연을 스스로 의도한 일로 얼른 바꾸었다.
“대장님 이것 좀 보세요.”
나인이 한 입 크기의 하트 모양으로 자른 수박을 내밀자, 리온이 나인의 손 위로 고개를 숙였다. 하암, 입을 벌린 리온의 보드라운 입술이 나인의 차가운 손 위를 훑고 지나갔다. 리온의 숨결이 닿은 나인의 손은 뜨거운 열기를 그러쥐었다. 그때, 나인은 순간적으로 버튼이 눌릴 뻔한 기분을 애써 지워냈다.
왕성한 혈기를 잠재우는 나인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온은 나인이 내민 것을 한입에 넣어 맛있게 씹어 삼켰다.
“수박 맛이 어떤가요?”
“달고 맛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