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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아우릭이 크게 다친 적이 있었나.
목에.. 그런 상처가 난 적이 있었던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졸음이 물러가고 머릿속을 가득 채워버린 호기심 때문이었다.
같이 목욕을 즐겨 하던 어린 시절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있었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너무 오래 전이고 그 시절만 해도 서로의 몸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적어도 저는 그랬다.
착각을 한 걸 수도 있다. 멀리서 보기도 했고, 달이 밝았다고 해도 어두운 밤이었으니 머리카락이 내려와 그려놓은 그림자를 피로에 찌든 뇌가 원하는 대로 받아들인 걸지도 모른다.
넘어지거나 맞아서 난 자국이 아니라 무언가 목을 타고 올라가며 맨살을 갉아먹은 것처럼 생긴 게, 참 희한한 모양이었다. 밖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긁힌 듯한 흉터.
야니크가 서재에는 별의 힘이 폭주하는 내용에 대해 적힌 책이 있다. 사용자의 조절 능력이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강한 힘을 내려고 애를 쓰면 생기는 위험에 대해 경고하는 이야기. 너와는 연관이 없는 이야기이니 헛된 독서에 낭비할 시간으로 훈련을 하라는 가주의 명령을 따라 앞부분 몇 장만 들춰보다 말아버렸던 책. 그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고개를 살짝 저었다. 피비앙스가에서 그런 문제가 일어났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숨기는 일도 정도가 있지, 아우릭 정도의 능력자가 폭주를 했다면 주변이 폐허가 되었을 것이다. 감추려는 시도조차 못하고 들켜버렸겠지.
마지막 서류 작성을 끝으로 손가락 사이에서 끊임없이 빙글빙글 돌던 펜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그제야 본인이 멍하게 허공을 훑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넓게 깔린 카펫에서 두바퀴 구른 펜은 금방 멈췄다. 주워들기 위해 허리를 굽히려는데 시야에 들어오는 팔 하나.
고개를 들었다. 먼저 펜을 주워 건네는 나인은 분명 웃고 있지만 짜증이 난 듯 보이는 표정으로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몇 번이나 노크를 했는데, 조용해서 안 계신 줄 알았어요.”
“무슨 일이지.”
“대답이 없던 일에 대해 먼저 사과하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눈썹을 치켜올렸다. 결국 들어와서 날 봤으면 된 거 아니냐는 뜻이 전달됐는지, 미소를 짓던 그의 입꼬리가 빳빳하게 굳었다. 숨을 크게 내쉬며 펜을 받아내자 부대장은 완쪽 옆구리에 끼고 있던 서류를 탁 소리가 나도록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단장님은 안 계시나보네요.”
“단장을 찾는 이유가 뭔가.”
“뭐겠어요.”
가느다란 검지가 종이 위에 적힌 이주 전 화요일의 날짜를 가리켰다. 제 시선이 닿은 걸 확인했는지 이번에는 손가락을 그대로 내려 하단에 있는 도장 칸으로 향했다. 네 개의 네모 중 비어있는 딱 한 곳으로.
베논은 짧게 한숨을 쉬며 무릎을 짚고 쇼파에서 일어났다. 어지러움에 바닥이 천장으로 솟구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안경을 벗고 손등으로 눈두덩이를 꾸욱 눌렀다. 어둠 속에서 펑펑 터져나가는 밝은 빛.
순간 몸이 휘청였다. 어어, 하는 소리가 들리고, 팔을 덥석 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괜찮으세요?”
매일이 반복이었다. 출근 시간이 지나도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는 아우릭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밀린 오전 업무를 처리하느라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는 날들. 언제쯤이면 제 시간에 퇴근을 할 수 있을지.
사랑하는 만큼 얄미웠다. 그는 친구로서도, 연인으로서도, 상사로서도 어느 하나 만족스럽지 않은 자였다. 분명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었다.
눈을 가리던 손으로 길게 내려오는 앞머리를 밀어올렸다. 깨지기 쉬운 물건이 위태로운 곳에서 떨어져 버릴까 봐 걱정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붙잡고 있던 나인은 한걸음 물러섰다.
묘하게 일그러지는 그의 얼굴. 무언가를 고민하더니 이내 테이블 위에 내려두었던 서류를 집어 들고, 돌아서서 단장 책상 앞으로 향한다.
“단장님은 제가 찾아볼게요. 상태를 보아하니 하루 종일 일만 하신 것 같은데 가서 식사를 하시던, 잠을 주무시던 하세요.”
그러다가 쓰러지겠다는 소리는 무시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네가 알 바 아니라는 날카로운 말이 튀어나오기 일보 직전인 걸 보면 피로가 쌓인 게 맞다.
잠과 식사 중 하나를 고르라면 전자였지만 아까부터 이상할 정도로 속이 살살 쓰려오고 있었다. 곰곰이 따져봐도 거른 건 어제 저녁 한 끼 뿐인데 어째서 이러는지. 식당으로 가서 푹 끓인 죽이라도 한 그릇 먹어야겠다.
“오늘 아침은 뭐지?”
먹을 메뉴는 정해졌으니 궁금하지 않았지만, 서류를 내려놓고 그대로 나가려는 상대의 등에 큰 소리로 물었다. 열린 문에 반 정도 가려졌던 뒷모습이 멈칫거리더니 어처구니 없는 대답이 들렸다.
“아침은 구운 빵에 잼을 바른 거였고, 지금 식당으로 가시면 드실 수 있는 건 갓 지은 따뜻한 밥이랑 맑은 국물이네요. 날이 더워서 시원한 면 요리도 만들어 놨어요. 참고로 점심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