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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 그날 , 흉터

스비마요

*

 

 그날.

 

 신전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퇴근한 시각, 베논은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며 한숨을 내쉬었다. 잦은 야근으로 쌓인 피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늘 꼿꼿하게 서 있던 어깨는 굽어졌고, 절대 굽어지지 않을 것 같던 고개는 자석에 이끌리듯 끊임없이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손등으로 콧대에 걸친 안경을 밀어올리고 검지로 뻑뻑한 눈을 부볐다. 불편한 의자를 피해 쇼파에 엉덩이를 댄 것이 문제였을까. 밀려오는 잠과 씨름하느라 아직까지 정해진 일의 절반조차 끝내지 못했다.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끄응, 하는 소리가 답지 않게 튀어나왔다. 장시간 앉아있었던 통에 허리가 쿡쿡 쑤셔왔다. 이래서는 몸이 금방 상하겠는데.

 

 환기를 시킬 생각으로 잠금장치를 풀고 창문을 열었다. 모든 것을 구멍 낼 기세로 쏟아지던 장대비는 그쳐 있었다. 습기를 머금은 시원한 바람이 얼굴에 눌어붙는다. 풀벌레의 목청 좋은 울음소리는 조용한 신전 뒤뜰을 가득 울렸다.

 양팔을 높게 치켜들고 등을 젖혔다. 언제부터였는지 몰라도 하늘을 가득 채웠던 먹구름은 사라졌고, 가려졌던 달은 모습을 드러내며 거침없이 빛을 뿜어댔다.

 여름이었다. 낮 동안 지글지글 끓어오른 땅이 늦은 밤이 되면 열기를 뿜어내는 계절.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젖은 풀 내음이 폐 안쪽으로 가득 차올랐다.

가늘게 뜬 눈을 굴린 건 갑자기 일어날 재난이라던가, 뜬금없이 나타날 마물에 대비하기 위한 습관이었다. 별 다른 뜻 없이 닿은 시선 끝에 누군가 서 있다.

 둥그런 은빛 정수리 위로 삐죽 올라온 머리카락 두 가닥, 바람을 맞으며 무겁게 흔들거리는 새하얀 망토, 잔디밭에 서있음에도 흙먼지 하나 없는 구두. 비에 젖은 낫이 그의 어깨에 걸터진 채 날 선 빛을 내고 있었다. 아우릭인가.

 등을 보이고 있던 몸이 천천히 돌아갔다. 그러자 창백에 가까운 연인의 옆모습이 보였다. 짙은 주황빛이 드리운 눈동자가 달을 향하고 있다.

 왜 저기에 있는 거지. 마물이 나타났다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고 해도 모를 리가 없다. 거기다 신경이 쓰이는 건 저 표정이었다. 은은하게 머금고 있던 웃음이 없는 얼굴. 서늘하다 못해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베논은 걸치고 있던 안경의 콧대를 한 번 더 밀어올렸다. 집무실과 신전 뒤뜰의 높이 차이 때문에 아우릭의 턱 끝을 약간 가리는 망토의 안쪽 부분까지 보였다.

 가슴까지 내려간 흰 넥타이와 풀어진 검은 셔츠의 단추, 그리고 목과 쇄골을 감싸듯 깊게 자리한 흉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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