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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랍게도 베논은 매번 꿈에 나왔다. 거의 평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언덕을 오르면 거대한 나무가 보이고, 분홍 꽃잎이 날리는 그늘 아래는 잠든 그가 있다.

 늘 같은 자세로 깨어나지 않는 이를 곁에서 지켜보았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고요하다. 이따금 돌을 던져 파문을 일게 만들고 싶은 충동이 들지만, 곧 사라져버리고 만다. 자신의 마음도, 그의 마음도, 이미 사귀었다 헤어진 사이라는 우리의 현실도 이 시간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원래의 제 성격으로는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질려버릴 상황이다. 바람이 풀을 스치며 사각이는 소리뿐인 곳에서 못이 박힌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사람의 얼굴을 옆에 앉아서 쳐다보기만 한다는 건 성질에 맞지 않았다.

 질리기를 바랐다. 재미없고 지겹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이상 잠을 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우릭은 멍하니 초점이 흐려진 눈동자를 굴렸다. 수면제의 영향이 남아있는 몸이 저릿거렸고,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없었다.

 며칠이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해는 떠올라도 제 방에는 빛을 뿌리지 못했다. 창을 가린 커튼이 절대 무너지지 않는 두꺼운 벽 같다. 식사를 오래 거르시면 큰일이 난다고, 답지 않게 발을 동동 굴리는 하인들을 위해 먹은 죽도 몇 그릇인지 모르겠다. 그저 누워서 눈을 감았고 언덕이 보이면 무작정 나무 곁으로 달렸다. 잠에서 깨면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로 들어오는 천장을 보다가 가끔 울었다.

 서럽다. 이번에는 꼭 깨워야지, 말을 걸어야지, 검은 눈동자를 마주해야지, 다짐하면서도 막상 그의 앞에 서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무릎을 꿇고 가만히 지켜보는 일뿐이었다. 몇 번이나 뻗었던 손을 움츠리고, 입술을 깨물고, 다시 나를 보는 눈에 이전과 같은 감정이 담기지 않을 거라고 두려워했다.

 왜냐면 사랑은 끝이 있기 때문이다. 제가 그러하듯 그 또한 끝을 봤을 것이다.

 알고 있다. 우리는 끝에 닿은 사이라는 것을. 

 

 주먹을 꾹 쥐었다. 그 사이 제법 자란 손톱이 손바닥을 간지럽게 긁었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아프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일주일이 넘은 것은 분명했다. 의사가 건네준 약통이 비어버린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예 밖으로 나가지 않은 날짜가 7일은 넘었다는 것인데 그는 소식이 없었다.

 

 가디언이 피비앙스 저택으로 찾아온 사실은 죽을 먹여준 하인의 입으로 전해 들었다.

 맨 처음 온 것은 로건이었다.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절 닮은 사람을 한동안 보지 못했다는 소식에 찾아왔다고 했다.

 계속 잠만 자고 있다는 소식에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뜨고 놀라던 그는 금방 돌아갔고, 그 후 오든과 제이드를 포함한 몇몇 크루세이더 단원들과 피스메이커의 대장인 리온, 대장이 바쁠 때 대신 찾아온 부대장 나인, 대별지기인 퍼디까지 들렀다고 했다.

 밍밍하게 입안에서 부슬거리는 죽을 삼키고, 바닥에 수저를 던진 뒤 다시 누웠다. 절반도 넘게 남은 그릇을 보던 하인은 끈적하게 떨어진 음식을 닦고, 쟁반을 들어 옮겼다.

 베논은 오지 않았다. 그는 부단장이니까 단장인 제가 없으니 바빠서 못 온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숨구멍 하나 뚫리지 않은 통 안에 갇힌 것처럼 갑갑해졌다. 잠깐 얼굴이라도 비출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냥, 지나가다가 한 번쯤은 궁금해서 들릴 수도 있을 텐데.

 머리 끝까지 이불을 덮어쓰고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걱정이 될 만도 한데. 다른 걸 떠나서, 그렇게 좋아하는 본인의 형 얼굴을 생각해서라도 피비앙스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는 걸 알면서, 한 번도 찾아오지 않다니.

 

 울컥 올라오는 신물. 인상을 쓰며 숨을 참았다. 명치까지 넘실거리던 것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며 속을 긁어낸다. 마지막으로 단원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벌써 세 번 정도 잠에 들었다 깨어났다. 아마 한 번만 더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식사를 들고 하인이 찾아올 것이다.

 그때는 물어봐야지, 베논은 오지 않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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