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rientalism
Collaboration
"허나 저하의 스승이 되라는 것은 전하의 명. 일개 신하인 제가 감히 왕의 명을 거역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이것 봐라? 그래서 너는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겠다는 건가? 내 편이냐 부왕의 편이냐를 묻는 질문에서 애초에 중립은 나올 수가 없는 답일 텐데, 그것도 이리 나를 앞에 두고서는.
"그러니 저는 감히 저하께 여쭙고자 합니다."
"무엇을?"
"이미 가득 차올라 세상을 훤히 비추는 달과 이제야 막 차오르기 시작해 하늘의 끝에 떠있는 달. 하지만 한 하늘에 달이 두 개일 수는 없지요. 이런 상황에서 그 두 달이 떠있는 하늘 아래 살고 계신 저하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현 상황을 비유하여 되려 내게 답을 묻는다라...
아우릭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턱을 쓸었다.
"나라면 이미 정상에 선 달보다는 정상을 향하는 길을 걸어갈 달을 택하겠지. 좋으나 싫으나 시간은 흐를 거고 언젠가 지금의 정상에 있는 달은 그 자리를 내려놓아야 할 테니까. 내 답은 그런데 그대라면 어떤 답을 택할 거야?"
내 스승이 될지도 모르는 이는 과연 어떤 답을 할지 정말 궁금하네~
혼잣말을 하듯 덧붙이는 아우릭의 말에도 상대는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고개를 들어 그와 시선을 맞춰왔다.
"저라면 그 둘을 모두 몰아내고 한결같이 은은하게 떠있는 별을 택할 것입니다."
"그래, 당연히 떠오르는... 뭐?"
"가득찬 달은 지는 것만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떠있는 것에만 급급하여 세상 곳곳을 굽어살피지 못하지요. 또한 차오르기 시작한 달 역시 그저 가득 찰 날만을 꿈꿀 뿐이라 마찬가지로 세상을 살필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합니다."
연이어 생각지 못한 답이 돌아옴에 잠시 멍해있던 아우릭은 이내 이어지는 상대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웃음을 입가에 올렸다.
재밌다, 너 진짜. 부왕께서 왜 그리 장담할 수 있었는지 좀 알 거 같네.
"그래,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두 달 모두 글러먹었으니 대체할 다른 이를 찾겠다 뭐 그런 거야?"
멍청한 부왕한테 너 같은 말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네. 너 같은 훌륭한 말이 부왕한테 있는 꼴은 내가 또 못 보지. 그러니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어.
그리 생각하는 아우릭의 금빛 눈동자엔 어쩐지 주황빛이 일렁이는 듯 보였다.
"대체할 이가 아닌 정상의 자리에 어울리는 이를 찾으려는 겁니다. 차고 지기를 반복하는 달에 비해 별은 그 위치가 변할지라도, 죽을 때까지 한결같은 모습으로 은은히 빛나고 있으니까요. 그런 별이라면 세상을 이미 고루 살피고 있지 않겠습니까."
"군주가 될 이라면 세상을 고루 들여다보며 살필 수 있어야 된단 거구나? 그래, 군주라면 그래야겠지. 억울히 죽어나가는 백성들이 없는지, 올바른 정책을 시행하여 백성들이 원만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두 살펴보아야겠지."
아우릭은 잠시 생각하는 듯 제 앞에 놓인 상 위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고민에 빠진 그 모습은 껄렁거리고 생각 없는 왕세자라는 그의 소문과는 전혀 매치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아우릭의 얼굴에서 무표정이 지워지며 예의 그 미소가 다시 피어났다.
"뭐, 좋아. 그럼 그대가 생각하기에 이 나라에서 별이라 칭할 수 있는 자는 누구야?"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