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rientalism
Collabo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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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는 노을로 시시각각 색을 바꾸는 하늘. 수도에 사는 주민들은 저마다 더 좋은 물건을 사기 위해 바쁘게 시장 이곳저곳을 오갔다. 길거리에 쏟아져 나온 상인들은 쉽게 볼 수 없는 해산물을 싸게 팔고 있으니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손뼉을 쳤고, 저녁 반찬으로 내기 좋은 고기가 들어왔다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은 밝은 얼굴로 북적이는 사람들 틈을 뛰어다녔고, 어른들은 지갑과 물건을 번갈아 가리키며 흥정하기 바빴다.
벌써 술에 취해 목젖이 드러나도록 웃는 사람, 옆 사람이 실수로 놓친 장바구니에서 넘친 물건을 같이 담아주는 사람, 바쁜 얼굴이지만 짐이 많아서 뛰지 못하고 급하게 걷는 사람, 두세 명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반갑게 아는 척 하는 사람. 아우릭은 그 사이를 걸어가며 양념만 남은 나무 꼬치를 흔들었다.
시끄럽기는 해도 싫지는 않은 풍경이다. 신전 안 크루세이더가 주로 머무는 공간은 제 눈치를 보느라 말 한마디 쉽게 하지 못하는 분위기로 딱딱했고, 피비앙스 저택은 살아있는 생물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처럼 조용해서 숨이 턱 막혔다.
이 시간은 어딜 가든 활기가 넘쳤다. 아침부터 내리 이어지던 바쁜 일이 끝나고 나온 사람들의 얼굴에는 옅은 피로가 있을지 언정 웃음이 떠나지는 않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시장을 찾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음, 배를 채울 수 있어서?
길 한구석에 세워진 쓰레기통에 꼬치를 넣었다. 이걸로 저녁도 다 먹었으니 이제 완전히 해가 지기 전까지 산책이나 해볼까.
그렇지만 여태껏 걸어 다니느라 다리가 좀 아픈데. 도서관에 가서 책이라도 읽을까? 퍼디한테 가서 놀아달라고 해봤자 무시당하겠지? 지금부터 잠을 자기엔 시간이 애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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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는 노을로 시시각각 색을 바꾸는 하늘. 수도에 사는 주민들은 저마다 더 좋은 물건을 사기 위해 바쁘게 시장 이곳저곳을 오갔다. 길거리에 쏟아져 나온 상인들은 쉽게 볼 수 없는 해산물을 싸게 팔고 있으니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손뼉을 쳤고, 저녁 반찬으로 내기 좋은 고기가 들어왔다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은 밝은 얼굴로 북적이는 사람들 틈을 뛰어다녔고, 어른들은 지갑과 물건을 번갈아 가리키며 흥정하기 바빴다.
벌써 술에 취해 목젖이 드러나도록 웃는 사람, 옆 사람이 실수로 놓친 장바구니에서 넘친 물건을 같이 담아주는 사람, 바쁜 얼굴이지만 짐이 많아서 뛰지 못하고 급하게 걷는 사람, 두세 명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반갑게 아는 척 하는 사람. 아우릭은 그 사이를 걸어가며 양념만 남은 나무 꼬치를 흔들었다.
시끄럽기는 해도 싫지는 않은 풍경이다. 신전 안 크루세이더가 주로 머무는 공간은 제 눈치를 보느라 말 한마디 쉽게 하지 못하는 분위기로 딱딱했고, 피비앙스 저택은 살아있는 생물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처럼 조용해서 숨이 턱 막혔다.
이 시간은 어딜 가든 활기가 넘쳤다. 아침부터 내리 이어지던 바쁜 일이 끝나고 나온 사람들의 얼굴에는 옅은 피로가 있을지 언정 웃음이 떠나지는 않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시장을 찾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음, 배를 채울 수 있어서?
길 한구석에 세워진 쓰레기통에 꼬치를 넣었다. 이걸로 저녁도 다 먹었으니 이제 완전히 해가 지기 전까지 산책이나 해볼까.
그렇지만 여태껏 걸어 다니느라 다리가 좀 아픈데. 도서관에 가서 책이라도 읽을까? 퍼디한테 가서 놀아달라고 해봤자 무시당하겠지? 지금부터 잠을 자기엔 시간이 애매하다.
“자아.. 이걸, 봐주십시오 나으리..”
들리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쳐다보았다. 언제 왔는지 허리가 90도로 굽은 노인이 거대한 수레의 손잡이를 꽉 쥐고 서 있었다.
나으리라니.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사람들은 각자의 일로 바빠 보였다.
“저기, 나 말하는 거야?”
“예. 나으리께서 봐주셨으면 합니다..”
덥수룩한 머리, 축 처져 억울해 보이는 눈매, 주름이 자글거리는 입가, 거칠게 일어난 피부. 늘어지고 헤진 얇은 갈색 티셔츠에 때가 잔뜩 묻어 통이 넓은 바지. 처음 보는 상인이다. 수도 바깥에서 온 사람인가?
노인은 말끝을 흐리며 빛이 없는 눈동자를 굴려 수레 위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온갖 물건이 저무는 해를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이것은 저 멀리 바다 건너에서 온 물건들입니다. 저희끼리는 ‘동양에서 온 것들’ 이라고 부르지요.”
“흐응..”
“귀한 것들입니다.”
새빨간 천이 얇고 가벼워 보이는 나무에 붙어있는 우산과 결을 따라 오묘한 무지갯빛을 내는 검은색 상자, 두툼한 실을 이용해 꽃 모양으로 짜여진 브로치, 굵은 나뭇가지와 분홍색을 점으로 찍어 꽃을 표현한 손수건. 확실히 이스델라에서는 흔하게 볼 수 없는 디자인이었다.
굳이 콕 집어 날 부른 건 뭐라도 하나 사 달라는 뜻이겠지. 물건을 집어 들었다 내려놓을 때마다 미묘하게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는 표정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흰색 옷을 입은 사람을 잡으면 한몫 챙길 수 있다는 소문이 거리에 은근하게 돌던데 그걸 들은 모양이었다.
아우릭은 목을 쭉 빼고 아무거나 주워들었다. 손안에 쏙 들어오는 원형의 물건. 한가운데 큼직하게 그려진 붉은 꽃과 몇 가닥 뻗어나간 푸른 나뭇잎. 직접 수를 놓은 것인지 손가락에 스치는 감촉이 오돌토돌했다.
“그건 동백이라는 꽃이 새겨진 거울입니다, 나으리. 버튼을 눌러 여시면..”
노인의 짧고 새까만 손톱이 옆에 달린 작은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자 원 가운데가 갈라지며 입을 벌렸고, 두 개의 거울이 모습을 드러냈다. 위에 달린 거울보다 아래에 달린 거울이 사물을 더 확대를 시킨 것처럼 보인다.
“와, 신기하네.”
“그렇죠? 아주 좋은 물건입니다.”
“좋아. 이거 살게. 얼마야?”
주머니를 뒤적여 지갑을 꺼냈다. 아주 싸지도, 터무니없이 비싸지도 않은 가격대로 지폐를 꺼내다 보니 문득 일찍 잠들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