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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문드문 사람이 오가는 거리를 두 사람은 약간의 거리를 둔 채 걸어갔다. 제법 늦은 시간이었지만 번화가 쪽은 여전히 사람도 불빛도 가득이었다. 베논은 말없이 먼저 인파 사이를 지나가는 로건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아까 술집을 나설 때부터 로건은 자신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생각에 잠긴 듯이 걷기만 했다. 

유난히 심각해진 로건의 뒷모습이 신경쓰였다. 마음 같아선 무슨 일이냐며 말을 걸고 싶었으나 그럴 분위기조차 되지가 못해 그저 말없이 뒤를 따랐다.

'저렇게 멍 때리고 걸으면 위험할 수도 있는데...'

베논은 로건에 대한 걱정으로 살짝 초조해했다. 그리고 그 걱정을 하기가 무섭게 앞을 보지 않고 걷던 로건이 부딫혀 중심을 잃고 말았다.

"로건!"

베논의 반사신경은 로건이 뒤로 넘어지는 것을 막아주었다. 로건의 팔뚝을 베논이 잡아 챈 순간이었다.

"윽!"

로건은 신음과 함께 얼굴을 확 구기며 비틀거렸다. 로건의 신음에 당황한 베논은 성급히 잡아 챈 팔뚝을 놓았다. 로건은 팔뚝을 잡고 고통을 호소하다가 정신이 들어 베논을 쳐다봤다. 항상 변화가 적은 베논의 얼굴에도 적잖은 놀라움이 묻어나 있었다.

"베논...이건..."

"어쩌다가 다친건가."

베논의 표정은 금세 걱정으로 물들어 있었다. 로건은 혹시나 베논이 알아챘을까 걱정했으나 다행히 베논은 표정은 별로 그래보이지 않았다. 사실 베논에게 숨길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로건이었으나 그래도 아직은 말하고 싶지 않았다.

"별 일 아니네. 그저...아까 낮에 일할 때 잠시 부딫혔는데 멍이 들었나 보네."

"혹시 약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가져다주겠네."

"아니! 그 정도는...고맙네, 베논."

로건은 웃으며 상황을 마무리 지었으나 베논의 눈에는 여전히 걱정이 담겨 있는 걸 눈치챘다.

'조심한다는 것을...'

로건은 혼자 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난 괜찮으니 이만 가세."

로건에 대한 걱정을 여전히 거두지 않았지만 베논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까랑은 다르게 로건과 평소처럼 나란히 복포을 맞추며 걸어갔다. 

말없이 걸어가면서 베논은 주위를 둘러봤다. 저녁을 넘겨 밤이 되어 가는 시각에도 거리는 활기를 띄고 있었다.  이렇게 주위를 보는 것도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하며 걸어가던 찰나였다.

"이번에 뿌린 벽서를 봤나?"

"봤지! 하는 말마다 어찌나 통쾌하던지!"

'벽서'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베논의 미간은 일그러졌다. 벽서하면 현재 떠오르는 인물은 단 하나였다. 오늘도 허망하게 놓친 '그 도적'이 떠올랐다. 다시 한번 그 생각을 하니 속이 들끓는 느낌에 다시 신경이 곤두서는 듯했다.

로건은 베논의 이런 변화를 금세 눈치챘다. 슬쩍 본 베논의 얼굴은 보기 드물게 화가 난 듯한 느낌이었다.

"베논...? 무슨 일인가?"

“로건…혹시 ‘동위’라는 도적을 들어봤나?”

살짝 무거움이 담긴 베논의 목소리에 로건은 혼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베논이 눈치 챘나 싶은 마음에 로건은 살짝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음…들어는 봤는데…갑자기 왜 묻는가?”

“자네는 혹시 그 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로건을 돌아본 베논의 눈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저 호의적인 눈빛이 지금의 자신을 향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딘가 기분이 오싹해졌다. 하지만 최대한 평정심으로 스스로를 다스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글쎄…나쁘다고 정의 내리기엔 어렵다고 생각하네.”

“로건, 그 자는 지금 이 나라의 혼란을 주고 있네. 그런데 나쁘지 않다고 정의 내린다니? 이해할 수 없군.”

베논은 그 어느 상황보다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내비쳤다. 그 표정을 본 로건은 망연자실을 느꼈다. 베논이라면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미래는 산산이 부셔진 셈이었다. 동시에 로건은 속에서 치고 올라오는 울컥함을 느꼈다.

“베논, 그 자가 누구를 그러고 있는 것인지는 생각해 보았나? 백성을, 양반들에게 수탈당하고 하루하루가 고통인 백성을 위해 그러는 것이 그리 잘못되었단 말인가?”

“취지는 좋을 수 있으나 그런 짓은 그저 범죄에 불가하네. 또한 나라를 혼란하게 만드는 것이 결코 좋은 일이라고 할 수는 없네.”

단호한 베논의 말에 로건은 상처를 입었다. 순간적으로 베논이 만약 자신이 곧 그 자라는 것을 알아도 저렇게 말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하지만 결국 미래는 생각나지 않았다. 저렇게 분노를 표하는 대상이라면 아마 자신이라는 걸 알아도 베논은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로건은 마음이 쓰라려 지는 걸 느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자신보다 조금 위에 있는 베논의 검은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하며 말했다.

“자네는…왜 그런 자가 나왔는지 생각해 보았나?”

“질문의 의도가 뭔가.”

“양반들이 백성을 수탈하기만 한 채 돌보지 않기 때문이네. 정녕 그걸 모르겠는가?”

“…그래도 이런 식은 그저 범죄에 지나지 않아. 자네는 대체 왜 그 자의 편을 드는 거지? 혹시 자네가 그 자라도 되는 건가?”

베논은 홧김에 던진 말을 금방 후회했다. 그 말을 던지고 마주한 로건의 시선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베논은 일 순간 멈칫했다가 금방 다시 사과하기 위해 입을 열었으나 로건이 먼저 선수를 쳤다.

“그럼 자네는 내가 진짜 그 자라면 나를 멀리 할 텐가…?”

로건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묻어났다.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지켜 온 벗으로써의 우정이 자신의 안에세 산산조각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들었던 베논을 향했던 마음도 함께 자신의 안에서 부서져 버리고 말았다. 로건은 밀려오는 슬픔을 애써 억누르며 힘겹게 입술을 뗐다.

“왠지…내가 알던, 백성을 사랑하던 베논이 사라진 느낌이네.”

“로건…!”

“나는…오늘 진심으로 자네에게 실망했네.”

로건은 품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책을 베논에게 넘겨주었다. 베논은 아무 말도 못한 채 그저 로건의 행동을 멍하니 지켜봤다. 로건과 마지막으로 시선을 마주했을 때 로건의 눈에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베논은 로건을 잡으려고 움직였으나 이미 멀어져 있었다. 베논은 이 날 로건의 마음이 자신에게서 멀어졌던 발걸음처럼 이미 되돌릴 수 없음을 깨달았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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